FRAGILE RELAY EXHIBITION
<Still Moments>에 참여하는

정지원 작가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정지원 작가님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부드러운 흙이 만나 단단하게 변하는 물성과 과정에 매력을 느껴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정지원이라고 합니다. 2년 전,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세시 작업실’을 꾸려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지원 작가 / 굽을 깎는 모습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저는 흙의 표면을 감싸는 ‘유약’에 주목하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약의 효과는 도자기의 강도를 높이는 동시에 표면을 장식합니다. 저는 이번 전시에서 수많은 실험을 거쳐 직접 개발하고, 선별한 유약의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제작했습니다. 제 유약의 특징은 차분한 색감과 미세한 질감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이 모여 군집을 이루고 있으면 더 아름답습니다. 식기로 제작한 ‘Oval dining set’, 찻잔 세트, 두 가지 크기로 제작한 ‘Oval bowl’을 비롯해 항아리처럼 공간에 놓일 수 있는 사물을 선보입니다.

'Oval dining set’ / 정지원 작가의 항아리 


지원 작가님의 작업의 큰 특징은 기물 바닥의 도침 장식입니다. 

‘참깨 씨 장식’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장식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도침은 과거에 가마를 땔 때, 가능한 많은 그릇을 넣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도구’였습니다. 당시엔 ‘장식’이 아니었던 거죠. 현재는 전기 가마를 쓰지만, 과거에는 한 번 가마를 땔 때 필요한 노동력과 땔감이 상당했기에 최대한 그릇을 많이 넣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조선 시대에 제작된 사발에서 도침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엔 안쪽에 도침을 놓고 그릇을 쌓았기 때문에 도침의 흔적이 양면에 있다는 점이 제 작업과 다른 부분입니다. 지금은 내화판*과 지주*가 있기 때문에 바닥면의 유약을 닦아내기만 하면 되지만, 저는 유약의 색감과 질감을 기물 내에서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어 ‘장식’으로써 도침을 활용했어요. 도침과 유약이 만나는 부분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또한 제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인 자연스러운 곡선을 만들기 위해 기물을 변형하는데, 이 때 바닥 가운데 부분이 튀어나오면서 쓰기 불편한 기(器)가 됩니다. 이를 보완하는 것은 도침을 활용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 내화판: 가마 안에서 기물을 쌓아 올려 소성할 때 쓰는, 내화 재료로 만든 넓적한 판 

* 지주: 가마에서 도자기를 재임할 때 상판과 상판 사이에 3~4곳을 받치는 내화물 기둥

소성 후 잔에 붙어 있는 도침

도침은 모래와 고령토, 그리고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알루미나 Alumina라는 산화물, 이 세 가지를 섞어 만듭니다. 세 가지 재료를 섞어서 반죽을 만든 후 이를 기물의 크기에 맞춰 필요한 만큼 떼어내어 삼각형으로 만듭니다. 기물의 형태와 크기에 따라 세 점 또는 다섯 점으로 도침을 배치합니다. 스프레이 시유를 마친 기물을 도침 위에 얹고 가마에 넣습니다. 가마 안에서 유약이 녹아 도침이 기물에 달라붙게 되면, 도침을 니퍼로 똑똑 떼어내고 핸드피스로 부드럽게 연마합니다.

도침의 재료가 되는 관악산 모래


이번 ‘Still Moments’ 전시에서는 작업과 함께 작가님께서 직접 촬영한 삶의 순간을 함께 전시합니다. 이는 어떤 순간들인가요?

10여 년 전 그리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순간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업실 근처의 산책길에서 본 담쟁이, 테니스장, 성곽길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긴 시간동안 한 공간에 앉아 작업을 하기 때문에 가벼운 운동과 생각의 환기의 필요성을 느껴 산책을 종종 하는 편입니다. 평소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리스의 ‘오래된 풍경’ / ‘붉은 담쟁이’ / ‘시간의 질감’ / ‘성곽’


그리스에서 촬영한 사진은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나요?

‘오래된 풍경’ 

저는 오래된 무언가를 좋아해요. 평소에도 우리나라의 한옥이나 궁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스의 건축 역사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래되었지만 놀랍게도 지금까지 원형이 남아있는 곳이 있고, 제가 찍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뒤쪽에 ‘여기는 신전이었어!’라고 말하듯 기둥들이 아직 꼿꼿하게 서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놀라움을 넘어 경외감을 느껴요. 반면에 앞쪽 돌들은 무너져 제 자리를 잃고 이렇게 바닥에 흩어져 있지만, 주변에 새로 난 꽃, 풀 그리고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죠. 오래 전 도공들이 사용했던 ‘도침 기법’과 제가 만든 유약이 서로 녹아들어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해요. 이러한 점들이 이 사진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게 하는 이유입니다.


작가님의 순간은 어떻게 작업에 녹아 있을까요?

‘붉은 담쟁이’

대부분 제 작업의 색감과 질감에 많이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계절 중 가을을 가장 좋아합니다. 가을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색’을 첫 번째로 꼽습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지 않고, 만들 수도 없는 색들이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니 눈과 마음이 즐거워요.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가을과 닮게 만들고 싶고,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차분한 색감의 유약을 선택해 작업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질감’

시간의 흔적으로 만들어진 질감을 제 작업에도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매끈하고 반짝거리는 표면보다, 손으로 만졌을 때 미세한 질감이 느껴지고 마치 오랜 시간이 흘러 광이 없어진 듯한 표면을 만들고자 해요. 오래된 사물에서 느껴지는 빛 바랜 질감은, 광택이 있는 매끈한 유약보다는 무광택 또는 반 광택 유약 선택으로 표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유약의 색과 질감


전시를 찾아와주신 분들과 나누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성곽길은 어느 구간이든 꼭 걸어 보셨으면 해요.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항상 아름답습니다. 지금 지명은 ‘서울한양도성’으로 바뀌었는데 오랜 시간 동안 ‘서울 성곽길’이라는 말을 많이 써 이 지명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저희 작업실 근처에 있는 구간은 경사가 완만해 비교적 난이도가 쉬우니, 걸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리고 저는 주로 제 작업의 영감을 일상에서 찾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장면은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도 볼 수 있지만,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아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저의 경험을 이 곳을 찾아주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한양도성 또는 서울 성곽길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손잡이 달린 찻잔 세트를 올해 하반기에 처음 작업해봤어요. 다른 작가분들에겐 쉬운 작업이지만 저는 석고 작업에 익숙하지 않아 시도하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앞으로 크기를 다양화해 에스프레소 컵과 머그잔도 작업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무수히 쌓인 실험 결과물들을 다시금 꺼내 보며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실험을 거쳐 쌓은 유약 데이터들이 많지만, 실제 작업에 쓰고 있는 유약은 극히 일부분이에요. 자주 해본 유약만을 쓰는 경향이 있어 새로운 유약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내년에 있을 공모전에도 준비하려 합니다.

찻잔 세트

정지원 작가의 작업실 전경

세시 작업실의 가마

김예원

사진 제공 정지원

기획 FRAG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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