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ILE은 자연을 주제로 작업하는 공예가 김윤지의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개인전 <선線·선禪·선善>에서는 자연을 주제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김윤지가 담아내는 세 가지의 ‘선’을 이야기하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김윤지 작가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인터뷰 영상

FRAGILE은 자연을 주제로 작업하는 공예가 김윤지의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개인전 <선線·선禪·선善>에서는 자연을 주제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김윤지가 담아내는 세 가지의 ‘선’을 이야기하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김윤지 작가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작가님의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백자 작업을 하는 공예가 김윤지입니다. 서울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3년 전부터 서울대 수원캠퍼스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캠퍼스의 풍성한 자연으로 둘러싸인 작업 환경 덕분에 주변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면서, 백토와 유약의 조화에 대해 고민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인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주로 물레성형 기법을 기반으로 작업해왔는데, 최근에는 물레성형과 핸드빌딩 기법을 함께 사용하는 작업 방식을 연구 중입니다.

굽을 깎고 있는 김윤지 작가의 모습


김윤지의 개인전 ‘선線·선禪·선善’을 소개해 주세요.

이번 개인전은 제가 많은 위안을 얻는 대상인 자연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발견하는 다양한 형태의 선(線)을 기물에 담아내는 작업을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매일 걸으며 자연이 만드는 선들을 찾아내고 이를 흙 위에 옮기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데요, 얇고 길게 밀어낸 흙 코일을 기물 위에 붙여나가거나, 혹은 물레 성형으로 만든 정형의 기물을 변형해나가며 저만의 풍경을 만들어봅니다.

이 과정은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인 또 다른 선(禪), 즉 일종의 명상과 같습니다. 눈으로 보고 기억에 남긴 풍경을 더듬어 조용히 오랜 시간 손을 움직이며 작업에 몰입해보는 과정이지요. 그리고 도자 작업의 특성상 작업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요, 예민한 성질을 가진 백자 소지이기에 갈라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건조하고, 완전건조된 기물을 초벌 소성하고, 초벌 기물 위에 유약을 시유하고 고온에 재벌 소성 과정을 거치고, 소성한 기물의 바닥 면을 다이아몬드 가루가 도포된 사포로 연마해야 비로소 기물이 완성됩니다. 이 과정 안에서 한 단계라도 집중하지 않았다면 그 소홀함은 결과물에 고스란히 남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바로 이전 단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최초의 성형 단계로 돌아가야만 해요. 모든 단계에서 올바르게, 곧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만 처음 자연에서 본 풍경처럼 좋은 기물이 완성되지요.

김윤지 작가의 작업 과정, 작가의 굽칼

손끝을 통해 명상하듯 추상적 형태로 만들어낸 기물이 자연의 선함을, 그 아름다운 선들을 담아내기를 바라며, 매일의 산책처럼 하루하루의 경험을 풍요롭게 하는 사물을 더 아름답게, 더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공예가로서의 다짐으로 준비한 전시입니다.

이번 개인전의 제목은 그래서 <선·선·선>입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소재로서의 선(線), 그리고 명상하듯 작업하는 과정으로서의 선(禪), 그리고 자연을 담아 좋은 사물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다짐의 선(善)입니다.

작가가 촬영한 자연의 모습


전시 주제이자 제목이기도 한 세가지의 ‘선’ 중 마지막 선(善)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작가님께서 추구하는 공예가 김윤지의 선(善)함은 어떠한 모습인가요? 그리고 이것이 다른 이에게 어떠한 의미로 전달되길 바라시나요?

자연의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거나, 때로는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저에겐 매우 소중합니다. 아름다운 형태와 질감, 색을 관찰하는 시각적인 즐거움은 물론이고 천천히, 그러나 참 부지런히도 흘러가는 자연의 시간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위안을 얻어요. 


현대사회의 사람들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평가와 비교, 판단과 비난이 뒤섞일 수밖에 없는데, 그 틈에서 벗어나 태고부터 그저 존재해온 자연 속에 있으면 선(善)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죠. 특히 식물들을 관찰해보면, 어떠한 가치판단 없이 그저 존재하면서도, 아주 규칙적이고 부지런히 각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살아가고 있음이 느껴져요. 봄에 피는 꽃, 여름에 놀라운 속도로 뻗어가는 덩굴들, 가을에 열매를 맺는 나무들처럼요. 


그런 자연에서 악함의 반대로서의 선함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에서의 아레테(aretē) 개념처럼 제 일을 올바르게 훌륭히 해내는 선함이 느껴지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선함이라는 것은 그저 착한 것, 순한 성격 이런 게 아니라 옳은 방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에 있어요. 그리고 그게 좋은 상태라고 보고요. 옳은 방식에는 정답이 없지만, 오답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옳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눈에 띄지요. 


사람들은 일상보다 어떠한 특별한 이벤트에 더 가치를 두는데, 사실 우리 삶은 몇몇 순간을 제외하고는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일상의 소중함을 잘 잊어버리고, 특별한 하루를 꿈꾸는 일이 많죠. 공예는 우리의 일상과 연관된 분야라고 생각해요. 늘 생활하는 공간에서,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 항상 같은 위치에서 시선이 닿는 사물들이죠. 그러한 사물을 제작하는 저의 하루 역시 지극히 평범하고 반복적입니다. 일상 속에서 좋은 사물들을 만들어나가며 올바르게 제 역할을 하려 노력하고 있고, 이게 제가 추구하는 선함인 듯해요.

김윤지 작가의 사진


전시에서는 선(線)이 특징적인 작업들이 많습니다. 

<섬> 작품에서의 선(線)은 작가님 내면의 어떠한 부분과 연결되어 있나요?

<섬_So far; yet so close> 시리즈는 코비드19가 가장 심각했던 시기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전세계적 펜데믹 사태로 인해 사람들 간의 거리가 멀어지고 각자의 삶 속에 고립된 것만 같은 나날들이 이어지던 시기였어요. 저마다의 바다 위에서 섬처럼 존재하고, 고요한 침묵 속으로 침잠해나가는 시간이었죠. 


그러나 이 힘든 시간 속에서 실제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들이 생겨나는 걸 동시에 보게 되었어요. 창밖으로 보내는 응원이나, 온라인을 타고 번지는 유대감 등에서 희망을 보았죠. 그게 마치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모두 이어지는, 태초엔 모두 맞닿은 육지였던 섬들처럼 느껴졌어요. 작업을 하며 내내 정현종 시인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시요. 저도 이당시에 집과 작업실만을 오가고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는데, 섬 시리즈 작업을 하며 사람들과, 또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어 위안이 되었어요. 

섬 / So far; yet so close


이번 전시의 작업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 가는 작업이 있다면 어떤 작업인가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새로이 작업한 벽 작업들에 애착이 갑니다.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조금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작업들인데, 멀리서 관조하는 풍경을 담기도 하고, 자연 속으로 한 발짝 다가가 미시적으로 바라보는 나뭇잎이나 나뭇결 등의 패턴을 담아내기도 해보았어요. 시각적으로 받아들인 정보가 제 머리에서 추상화되고, 그 이미지를 손끝의 촉각을 사용해 핀칭 기법으로 작업을 완성하면서 눈과 뇌, 손이 바쁘게 협동하며 제작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선線 · 선禪 · 선善  /  The line·The meditation·The goodness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과정은 무엇인가요? 

도자 작업의 특성상 모든 과정이 중요하지만, 지금은 그중에서도 기물 위에 선을 붙여나가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자연의 선들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듯 제작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추상화한 주관적인 이미지를 그리면서도 동시에 공예가로서 추구하는 사물의 완성도를 잃지 않도록 객관적인 시선으로 기물을 바라보면서 작업을 해나가는데, 그 균형을 맞춰나가는 지점이 흥미롭지요.

'섬 / So far; yet so close' 의 작업 과정


도자 작업을 하며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도자 작업은 한 번 고온에 소성되면 다시 썩거나 흙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고려 시대에 가라앉았던 배에서 해양 유물을 건져 올리면 놀랍도록 온전한 모습의 도자기가 발견되는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제가 만든 사물이 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점은 공장에서 제작되는 플라스틱 제품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저는 기계처럼 대량생산을 할 수 없다는 점이지요. 손으로 직접 사물을 제작하는 공예는 환경을 의식하고 지구의 감소하는 자원을 존중하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대량생산체제 이후 가속화된 삶의 건전한 대척점에 있다고 보고요. 


그래서 저는 지구에 반영구적으로 남는 사물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더 잘 만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합니다. 그래서 더 오래 사용되는 사물을 만들 수 있다면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역할을 할테니까요. 이게 공예가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하고 항상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물건을 더 잘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구름 / A Cloud' 의 작업 과정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에겐 가장 큰 영감이 되는 자연이라는 소재를 지금처럼 계속 수집해나가면서 자연의 선 뿐 아니라 질감이라는 부분도 작업에 담아 내보고 싶어요.

아주 과거에는 모든 사람이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기 때문에 손의 감각, 즉 촉각이 매우 예민했다고 하는데요. 산업사회 이후로 돈만 내면 원재료에 수많은 가공 과정을 거친 완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과거와 달리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촉각적 경험이 현저히 줄어들었죠. 공예는 실재하는 물성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사람들에게 손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되살리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해오던 작업에 더해서 자연의 질감을 담아 촉각이 강조된 도자 작업을 이어나가려 합니다.

작업 중인 김윤지 작가의 모습

작가가 촬영한 자연의 질감

<선線·선禪·선善>을 구매하고 싶다면

김윤지

사진 제공 김윤지

기획 김예원, FRAG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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